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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
나무를심는사람들
박혜란 지음
2017-01-09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b>“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은 망한 날!”
심심한 걸 못 견디는 재미주의자, 70세 호기심 대마왕이 펼치는 일상 찬미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로 대한민국에 육아 신드롬을 일으킨 여성학자 박혜란이 진솔하게 써내려 간 노년의 일기와 같은 <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로 돌아왔다.
아이 육아에 올인 하지 말고,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 주라는 말, 마흔이 넘어 시작한 여성학 공부를 위해 고3 아들을 두고 중국으로 유학 떠나고, 20년을 살았으면 계속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게 하자는 결혼 정년제를 들고 나오는 등 출간한 책마다 센세이셔널 한 메시지로 20대에서 70대까지 여성들을 들썩이게 한 박혜란이 일흔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나이로 딱 일흔이 되던 해의 첫날 아침, 눈을 뜨니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 껄쩍지근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분.”(7쪽)
70은 명실공히 노인인증서라고 말하는 저자는 “드디어 노인이 된 그날” 껄쩍지근한 기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가슴 밑바닥에서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아리송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한층 가까워진 죽음 앞에서 앞으로 과연 어떻게 하루하루 나이 들어갈 것인가.”(8쪽)
<b>어떻게 매일매일 웃는 일이 있을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그리고 제주까지 일흔이 되었지만 박혜란은 종횡무진 대한민국을 누빈다. 저술 활동 외에도 강연, 방송 등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도 나이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마라톤 선수를 해도 좋을 만큼 심장이 튼튼하다는 말을 들은, 신체 부분 중에서 유일하게 자랑스러웠던 심장에는 세 개의 스텐트가 박혀 있고, 삼시 세끼 차려먹는 일이 갈수록 버겁기만 하다. 오십 년 이상 사귀어 온 죽마고우 같은 커피도 오후에 한 잔 마시면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깨어 커피 마시는 걸 주저하게 되었다. 괜찮다가도 느닷없이 기운이 쫙 빠지는 몸의 변화와 저녁 9시가 되면 어김없이 졸음에 빠지는 등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 바뀌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찾아왔다. 스스로를 심심한 것을 못 견디는 재미주의자라고 여기지만, 갈수록 웃을 일은 줄어갔다.
어느 날 강연 말미에 한 청중이 저자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꿈은커녕 그저 이대로 현상 유지만 하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심정인데 70 넘은 이에게 꿈이 뭐냐니? 하지만 강연 내내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떠들어 대 놓곤 나이 뒤에 숨을 수는 없었다.
인생 선배로서의 책임감으로 여든 살까지 하고 싶은 일들을 빛의 속도로 떠올려 일흔 살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냈다. 바르셀로나, 프라하 같은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한 달쯤 살아 보기를 꿈꾸고,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대학시절처럼 연극 무대에 서고 싶은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몸이 자신을 가지고 놀아도 기죽지 않고 마음만은 늘 즐겁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손주들이 아이언맨 인형을 갖고 놀 때 위풍당당하게 “얘들아, 할머니는 아이언우먼이란다. 심장에 아이언이 세 개나 박혀 있거든.”이라고 유머러스하게 말한다.
외출할 때면 휴대폰이나 지갑, 복용하는 약 등을 놓고 나와서 번번이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 잦아져 치매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미니카를 타고 싶어 하는 손녀딸을 위해 두려움을 이기고 넓은 잔디밭을 종횡무진 누비는 용기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뿐이 아니다. 젊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여전히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오실 데가 아니에요. 시끄러워서 못 견디실 거예요.” 하며 자신의 첫 콘서트 초대를 거절한 아들 이적의 말에 잠깐 고민했지만 아들의 공연은 자신에게도 첫 경험이라는 생각에 직접 표를 사서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박혜란이 들려주는 노년의 이야기는 낭만을 강조하거나 이렇게 나이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세월을 받아들이며 작가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한층 여유롭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준비되지 않은 노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갈수록 강팍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홀로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하는 세대들에게 한바탕 웃음, 한순간의 용기, 한 줌의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조용히 들려줄 뿐이다.
<b>나이 듦에 완벽한 대책은 없다.
열심히 대충대충 살자
“네가 대충대충 살았다면 난 어떻게 살았단 말이냐”며 화를 내는 친구, “지금 나한테 너 잘났다고 자랑질이냐”며 빈정대는 친구도 있었다. 너무 대충대충 산 것 같아 고민이라는 말을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그랬다.
청소도 대충, 요리도 대충, 아이 셋도 최선을 다해 키우려 하지 않고 대충대충 키웠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컸다고 말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워서 한 말이었다.
“대충대충 살았으니까 지금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 거야. 최선을 다하겠다고 용을 썼으면 벌써 지쳐서 쓰러졌을걸.”이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 “어머니가 대충대충 사신 건 사실인데요. 대충대충 살았는데 이 정도면 꽤 잘된 거예요.”라는 아들의 말에 용기를 얻기도 한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불만과 불안을 갖기보다 ‘대충대충 산 게 나한텐 최선이었어.’라며 자신을 위로할 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이런 위로는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살아온 칠십 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고비고비마다 해 왔던 자신의 선택들, 학교와 직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과 육아와 만학, 그리고 그밖의 갖가지 활동들은 지금 하는 선택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예측하거나 우려하는 대신에 ‘지금, 여기’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접점을 찾았던 것임을 알았다.
완벽하게 준비를 해도 인생은 늘 뒤통수를 치고, 백세 시대를 노래 불러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많다. 치열하게 살라고 다그치기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해서 완벽한 대책을 세우라고 말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가진 것을 들여다보면서 행복은 바깥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속에 있다는 간단명료한 진리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b>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
“64년을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더운 여름은 난생처음인 것 같아요.”
지인의 말에 나도 거들었다.
“64년은 그래도 낫지. 난 70년을 살아오면서 이런 더위 난생처음이에요.”
64년이면 어떻고 70년이면 어때, 별걸 갖고 다 경쟁을 하는 것 같아 우린 그 무더운 거리 위에서 소녀들처럼 깔깔 웃었더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어찌 이 무더위만 난생처음일까. (275쪽)
난생처음 겪는 무더위 앞에서 새삼 하루하루 겪는 일 하나하나가 다 난생처음이란 엄숙한 사실을 되새겼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나 온 지인들이지만 이렇게 무더운 날 만난 것도 난생처음이었고, 무더위 속에서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그토록 오랫동안 하염없이 기다려 본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파우스트>를 다시 읽으며 예전에 그토록 몰입했던 그레트헨과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거대한 서사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임을 알게 되고, 여섯 손주들과 사랑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책을 내고,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등 다이내믹한 것들에 들떴다면 이제 일상의 새로움에 대해서 새롭게 눈 뜨게 된 것이다. 새로운 이벤트가 없으면 사는 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지만, 알고 보면 오늘 하루하루가 난생처음 맞는 날이라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자에게 오늘 하루는 가능성의 하루다. 성장과 성찰의 하루가 될 수도 있고, 기계적 일상에서 반짝 하는 순간의 발견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움츠러들고 좌절하는 대신에 희망의 하루, 가능성의 하루를 발견할 수 있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인생은 참으로 멋진 것이 아닌가.
반백의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성학자. 어느 날 아침, 머리를 묶어야 하는데 오른쪽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온 것이다. 내 머리도 내 마음대로 못 묶는다는 사실에 맥이 빠져 며칠이나 서글퍼하다가 동네 미용실로 달려갔다. 그때부터 쇼트머리가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묶을 수 없으면 묶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였다.
심장에 스텐트를 세 개나 박고 사는 성인병 환자지만, 취향에 맞는 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혼자 영화관 가기를 마다하지 않고, 피 칠갑한 시체들이 널려 있는 CSI 드라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별스런 할머니이기도 하다. 혼자 놀 줄 안다는 건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어서 남에게 섭섭함을 느낄 겨를이 없기에,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곧 여럿과 잘 어울릴 줄 안다며 ‘혼자 놀기’를 호모헌드레드 시대의 잘 늙어 가는 방법의 하나로 설파하고 있는 중이다.
저서에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결혼해도 괜찮아』, 『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 『나이듦에 대하여』, 『삶의 여성학』 등이 있다.
프롤로그 드디어 노인이 되었다
1. 일흔 살의 버킷리스트
DNA는 강하다
할머니는 용감했다
생활의 기초
할머니는 피닉스
칠순파티
나의 버킷리스트
2. 우리는 여전히 젊다
나의 독일어 선생님
친구가 떠났다
인생이란 것
제사의 추억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우리는 모두 젊어 본 적이 있다
3. 열심히 대충대충
할머니는 언제부터 착해졌어요?
대충대충 살았어요
내게도 좌우명이
삼시 세끼
드라마에 빠지다
멈춰라, 시간아
스마트한 세상 속으로
함께 늙어 가는 재미
4. 부탁해, 마이 바디
몸아, 나를 부탁해
나는 아이언우먼
뱃살 콤플렉스
치매는 두려워
어르신 대접
그녀가 궁금하다
지극히 쿨하고, 지극히 따뜻한-어떤 독후감
5. 다 생각하기 나름
시골집
새
‘가족처럼’
할머닌 우리 가족이 아니에요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너희들이 기적이다
옐로스톤의 숲
6.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들
평생이 황금기?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로!
졸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만하면 됐지
내가 꿈꾸는 세상
한번 들어 보련
에필로그 오늘, 난생처음 살아 보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