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전자책

검색

인간의 모든 성격 -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해문집

최현석 지음

2018-08-19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철학.과학으로 통섭한, 인간 본성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특별한 ‘성격’의 해부 + 인간의 모든 ‘성격’을 집대성한 개념 사전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의 저자이자 의학계의 권위 있는 상인 제39회 ‘동아의학상’을 수상한 최현석 박사의 신작. ‘감각’, ‘감정’, ‘동기’ 등의 키워드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새롭고도 총체적으로 풀어낸 [인간개념어사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철학과 과학, 심리학과 의학의 경계에서 인간의 모든 ‘성격’을 집대성한 통섭의 교양서다.
성격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성격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걸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걸까? 우리의 생각과 정서와 행동에 성격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성격을 측정하고 분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성격에 해당할까? 성격에서 정상과 비정상은 어떻게 나뉠까? 좋은 성격과 나쁜 성격은? 성격도 바꿀 수 있을까? 등등 우리가 알아야 할 ‘성격의 모든 것’이다.

흔히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때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자기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외부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다. 반면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성격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제3자를 이야기할 때는 쉽게 ‘그 사람은 성격에 이런 문제가 있어’라고 하지만, 자신의 문제라면 이를 인정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자기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는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성격이란 무엇이며, 과학적으로 어떻게 규정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성격유형, 성격특질, 성격요인, 인지구조, 성격발달, 성격검사, 성격장애 등 14개의 범주에 따라, 74개의 키워드로 ‘성격’의 원천을 해부한다. 이를 위해 동서양을 망라하는 철학적 개념들과 수많은 흥미진진한 심리학 실험 및 연구 결과들이 동원된다. 특히 체질이나 관상, 골상학, 손금, 점성술, 사주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인간의 성격을 탐구해왔던 역사적 흐름부터 현대의 성격심리학과 인지심리학, 긍정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성격과 관련한 주요 개념과 이론을 그 용어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까지 흥미롭게 추적해내고 있다.
점법에서 범죄생물학까지, 혈액형과 에니어그램, 성격 예측의 아이러니, 성격의 ‘빅 파이브’, 신경증은 20세기 최대의 유행병? 신경성이 극단적으로 낮으면 사이코패스? 신경안정제 등장이 불안증 진단을 늘렸다? 외향형 성격이 초콜릿을 좋아하는 이유, 내향적인 성격이 장애라고? 유일하게 지능과 관련 있는 성격인 개방성, 마음과 감정을 읽는 능력,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성격은? 이타심은 항상 좋은 걸까?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성격인가 상황인가,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의 차이, 자존감은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성격검사는 어떻게 할까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동서양을 망라하는 철학적 개념들 + 현대 성격심리학의 탄생


성격에 대한 본격적인 이론이 정립된 것은 193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올포트가 ‘성격심리학’을 창시한 이후부터였다. 올포트는 성격을 ‘바로 그 사람인 것(What a man really is)’이라고 정의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성격이라는 개념으로 한 개인의 독특성(uniqueness)과 일관성(consistency)을 설명한다. ‘독특성’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개인의 정서·동기·인지·행동 등에서 표현되며, ‘일관성’은 시공간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 행동유형의 안정성을 의미한다.
올포트는 1936년 웹스터 영어사전에 수록된 40만 단어 중 인간과 관련된 단어 1만 7953개를 찾아내고, 그중 성격을 나타내는 4504개의 단어를 골라 이를 ‘성격특질(personality traits)’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심리학자 커텔은 이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비슷한 단어를 제외하는 방법으로 171개 단어를 골라낸 후, 생활분석·설문조사·심리검사 등을 통해 서로 상관관계가 높은 특질들을 몇 개의 범주로 묶었다. 그 결과 16개의 근원특질이 추출되었고, 이를 ‘성격요인(personality factor)’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5가지의 성격요인으로 성격을 분석하는 ‘5요인모델’이 성격심리학의 주류가 되었다(1949년 처음으로 이 5가지 특질의 개념이 등장한 이래, 1985년 맥크레와 코스타가 최종적으로 확립했다). 즉 신경성, 외향성, 개방성, 원만성, 성실성의 5가지 척도로 각 개인의 성격 프로필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신경성(neuroticism)이 높은 사람은 불안증을 많이 느끼고, 좌절로 인한 적대적인 분노를 자주 느끼며, 우울한 기분에 빠지고, 수치감과 같은 자의식이 강하며, 충동적인 만족을 추구하고,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신경성이 너무 높으면 정신과적으로 우울증과 불안증을 많이 앓게 되고, 조울증, 조현병, 경계성 성격장애, 조현형 성격장애, 회피성 성격장애, 의존성 성격장애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성격이란 항상 양면성이 있어서, 신경성이 높으면 과도한 걱정에 시달리지만 너무 낮으면 위험성을 과소평가해 실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신경성이 극단적으로 낮은 그룹 중 하나가 사이코패스다). 때로는 미래에 대한 우울한 판단이 정확한 판단일 수 있는데, 이를 ‘우울한 현실주의’라고 한다. 작가·시인·예술가들에게서 우울증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고, 높은 사고능력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신경성이 높을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측면도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매켄지는 대학생의 학업성취도를 예측하는 지표로서 신경성을 연구하면서, ‘자아강도(ego-strength)’가 높은 학생들은 신경성이 높을수록 학업성취도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자아강도란 성실성과 비슷한 개념인데, 높은 신경성이 높은 성실성과 결합하면 걱정이 많을수록 더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이다.

‘외향적이냐 내성적이냐’라는 평가는 성격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범주다. 외향성(extraversion)은 흥분되는 일을 좋아하고 외부 현실을 지향하며 사회적이고 충동적인 반면, 내향성(introversion)은 조용하고 자신의 내부 현실을 지향하며 질서가 잡힌 생활을 좋아하고 자기성찰적이다. 또 외향성이 높은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사교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하고 활동적이며, 자극적인 일을 추구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많이 경험한다. 반면 내향적인 사람은 말이 적고 침착하며,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경향이 있으며, 지나치게 바쁜 생활을 싫어하고 평온한 상태를 좋아하며, 쾌락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20세기 초반 미국의 자기계발 열풍과 맞물려 ‘외향성’의 성격이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화역사가 워런 서스먼은 20세기 초반에 미국이 ‘인격(character)의 문화’에서 ‘성격(personality)의 문화’로 전환되었다면서, 이 새로운 문화에서 가장 각광받는 역할은 연기자였고 사람들은 모두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고 한다. 서스먼은 19세기의 인격 지침서들에서 추천되는 좋은 자질들은 ‘시민으로서의 자질, 의무, 일, 고귀한 행위, 명예, 명성, 도덕성, 예절, 진실성’ 등이었는데, 20세기 지침서들에서는 ‘자석처럼 끌리는, 마음을 사로잡는, 충격적으로 멋진, 매력적인, 눈부신, 지배적인, 강력한, 에너지 넘치는’ 등으로 기준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1920~30년대에 미국인들은 영화배우에게 사로잡혔고, 이들을 스타(sta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미국의 학교들은 좋은 성격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기 시작했고, 부모는 아이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클래식음악 감상처럼 혼자서 즐기는 취미는 하지 못하도록 했다. 외향적인 성격이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내향적인 아이는 문제아로 지적되었다. 이제 미국에서는 숫기 없음이나 소심함 등은 고쳐야 할 좋지 않은 성격이 되었고, 급기야 1970년대에는 내향성이 성격장애로 등록되기도 했다. 1978년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 질병분류인 《ICD-9》의 정신질환 목록에는 성격장애로 10가지가 등록되었는데, 그중 조현성 성격장애의 하위 항목으로 내향성 성격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미국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 치열한 논쟁 끝에, 결국 1994년에 개정된 《ICD-10》에서는 삭제되었다.

성격심리학에서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이란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의미하는데, 성격의 다섯 특질 중 유일하게 지능과 관련이 있으며 교육과 훈련으로 강화될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술과 미(美)를 중요시하며,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며, 지적인 호기심이 강하고 기존의 가치관을 재점검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다. 반면 개방성이 낮은 사람은 확실한 원칙이 있는 세상을 좋아하고, 권위와 전통, 안정과 질서를 중요시하며, 오래전부터 해오던 습관과 익숙한 일을 유지하려 한다. 시험 삼아 뭔가를 해보는 것은 싫어하며, 새로이 시도되는 현대예술이나 비현실적인 논쟁도 싫어한다.
그런데 개방성은 타인이나 새로운 가치체계에 대한 열린 마음뿐 아니라, 본인에게 떠오르는 이상한 느낌이나 경험도 수용하려는 성향도 포함한다. 그래서 개방성이 너무 높으면 우연히 떠오르는 생각과 이미지를 걸러내지 못해 현실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고, 종종 이상하고 괴이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초자연적이거나 영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도 높아 이들이 실재한다고 수용하려 하기 때문에, 최면에도 잘 걸리고 독특한 믿음을 갖는 경우가 많으며 이국적인 종교를 추구하기도 한다. 미학적인 것과 신비주의적인 관념이 얽히고, 신비주의적인 관념은 비과학적인 관념이 되고, 비과학적인 관념은 서서히 망상이 된다. 괴이함과 개성이 얽히면 조현형 성격이 되고, 심하면 정신병이 된다. 따라서 개방성이 증가하면 창조성이 높아지지만 정신병을 겪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원만성(agreeableness)은 타인에 대해 동정적이냐 냉혹하냐의 정도를 나타내는 성격특질로, 친화성?우호성 등으로도 번역된다. 원만성이 높은 사람은 신뢰가 있고 솔직하며, 겸손하고 이타적이며, 대인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타인에 공감하는 부드러운 마음씨를 보인다. 한마디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착한 사람이며, 영어에서 ‘좋은 성격(good personality)’이라는 표현도 원만성이 높은 성격을 말한다. 그러나 타인을 지나치게 신뢰하면 속임수에 취약하며, 좋은 관계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면 타인 의존적이 된다. 반대로 원만성이 낮은 성격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인간이며, 극단적으로는 반사회적 성격과 나르시시즘 성격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경계성 성격장애에서는 상황에 따라 양쪽 극단으로 왔다 갔다 하며 변동이 심하다. 흥미롭게도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성격은 ‘악한’ 성격이라고 한다.
반사회적 성격이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상 성격으로, 흔히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로 통용된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성격장애로 진단되는 경우가 드물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일반 남성의 3% 정도이고 여성의 경우 1%에서 나타나는데,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인을 대상으로 하면 남성 재소자의 47%, 여성 재소자의 21%가 여기에 해당한다. 성공한 사이코패스는 일인자(number one)를 최고로 생각하며, 자신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열정적이고 말을 잘하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속임수를 좋아하고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핵심적인 심리적 특징이다. 두려움이 없고 확신에 찬 모습, 카리스마, 무자비함, 뛰어난 집중력 등은 현대인이 성공하기 위한 성격으로 여겨지는데, 사이코패스가 가지는 특징들이기도 하다.
1991년 사이코패스 검사 방법을 개발(본문 140~141쪽 참고)한 캐나다의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헤어는 《직장으로 간 사이코패스(Snakes in Suits)》(2007)라는 책에서, 직장 세계에서는 사이코패스가 일반 사회 평균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했다. 특히 직장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사이코패스가 증가하여 고위직의 3~4%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을 ‘사이코패스 기업인’이라고 한다. 영국 경영학 교수인 클리브 보디는 월스트리트의 사이코패스 행태가 2007~2008년의 세계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영국 심리학자인 케빈 더튼은 2011년 영국의 사이코패스 조사 결과, 사이코패스가 많은 직종으로 CEO, 변호사, TV 미디어 종사자, 판매원, 외과의사, 저널리스트, 경찰관, 목사, 셰프, 공무원 등 10가지를 선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성실성(conscientiousness)이란, 정리 정돈을 잘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성취욕이 높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꾸준히 노력하고, 언행에 앞서 숙고하는 성격특질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아이들의 경우 성실성과 원만성은 낮고 신경성은 높게 나타나는데, 성실성의 한 측면인 충동적인 욕구를 조절하는 자기규율이 약한 것이다. 그런데 정리 정돈이 너무 심하면 강박적 성격이라고 하며, 강박 성격으로 자신이 괴롭고 주위 사람도 힘들게 하면 강박성 성격장애라고 한다.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목적과 수단이 괴리되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스케줄이나 계획을 지키는 일이 우선 과제가 되어버려서 결국 일을 망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완벽주의에 대한 연구는 우울증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우울증 진단 심리검사를 처음 개발한 미국의 정신과 의사 아론 벡은 제자인 데이비드 번스와 함께, 만성우울증과 자해 행동을 보이는 여성의 사례를 1978년에 보고하면서, 이 여성의 문제가 과도하게 완벽주의적인 성격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이후 번스는 완벽주의를 측정하기 위한 심리검사를 개발했는데, 완벽주의자란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비합리적인 높은 기준을 세우며,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서 강박적으로 노력하며, 자신의 가치를 성취 결과에 의해서만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또 완벽주의자는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너무 집착해서 수치심, 죄책감, 창피함 등의 감정을 자주 경험한다. 1980~90년대에 완벽주의는 강박장애, 우울증, 신경성 식욕부진 등 병적인 상황과 연관되어 연구되었다.


인지심리학과 새로운 ‘자기’의 발견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미셸은 1968년 《성격과 측정》이란 책에서, 성격검사로는 인간 행동을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성격 연구 무용론을 주장했는데, 인간의 행동은 성격보다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성격특질을 연구하던 심리학자들의 반발을 유발했고, 치열한 논쟁(개인-상황 논쟁)이 진행되면서 1970년대의 성격심리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전적인 사회심리학 실험으로 ‘선한 사마리아인’ 연구가 있는데, 미셸은 1973년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상황을 재현해봤다(본문 169~170쪽 참고). 그 결과,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 유발에 시간 압박이라는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드러났다.
논쟁 초기에는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성격이냐 상황이냐’의 논쟁이었지만 차츰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로 발전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둘 다 중요할 뿐 아니라 상호 작용한다는 관점으로 수렴되었다. 즉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의 성격에 따라 행동에 다른 영향을 미치고, 같은 성격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라 하더라도 성격특질 중 신경성의 정도에 따라 우울증을 초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또한 상황에 따라 개성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성격과 관계없이 동일한 행동을 한다. 미셸은 이를 ‘상황강도(situation strength)’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즉 강한 상황(예: 교통신호)에서는 동일한 행동을 하도록 강요되기 때문에 개인의 성격이 언행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약한 상황(예: 공원 산책 등)에서는 자기 성격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개인-상황 논쟁을 거치면서 성격이론은 특질이론과 인지심리학 양대 축으로 재편되었다. 인간의 지각, 기억, 학습, 판단, 사고, 언어 등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은 행동주의심리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새로이 발전하는 신경과학과 결합해서 실증적인 이론들을 제시했다. 그중 가장 중심적인 개념이 도식(圖式, schema)이다. 도식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인,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상황 등을 해석하는 틀로서, 일단 형성되면 영속되는 인지구조다. 예를 들어 ‘외향적인 성격’이라는 자기도식을 가진 사람은 모임에서 그렇게 행동하고, 과거를 회상할 때도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라고 회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러 개의 자기도식을 가지는데,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도식이 지배한다. ‘건강함-건강하지 못함’이라는 도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나 무슨 활동을 할 때 자기만의 건강도식에 따르고, 외모에 대한 특정 도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신체 이미지로 가꾸려 노력한다. 현재 심리학에서 ‘자기(self)’는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주제인데, 성격심리학에서는 자존감(self-esteem), 자기점검(self-monitoring), 자기표현(self-presentation),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 자기효능감(self-efficacy) 등으로 연구되었다.


정상과 비정상, 성격장애, 그리고 긍정심리학의 탄생


성격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면접과 심리검사를 하며, 필요할 경우 행동관찰과 신경심리측정 등을 한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성격검사는 질문지에 스스로 답변한 것을 평가하는 자기보고검사이다. 1943년 미네소타대학에서 처음 개발된 ‘다면적 인성검사(MMPI)’는 가장 신뢰성 있는 성격검사 방법이지만 정신질환 진단을 위한 도구로 개발되었기에 정신과 진료에서 주로 이용되고, 현재 대중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격검사는 1956년 마이어스와 브리그스 모녀가 발표한 ‘성격유형검사(MBTI)’이다(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MBTI는 4개의 성격차원인 외향-내향, 감각-직관, 사고-감정, 판단-인식 등에 대한 선호도를 평가하여 16가지 성격유형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MBTI에는 신뢰도와 타당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성격특질의 ‘5요인 모델’을 확립한 코스타와 맥크레가 1992년 발표한 ‘NEO 성격검사(NEO-PI-R)’가 현재 성격심리학 연구자들에 의해 많이 이용되고 있다(1978년 처음 개발한 이후 최종적으로 1992년에 개정된 것이다). 신경성, 외향성, 개방성, 원만성, 성실성을 측정하는 총 240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성격에도 정상과 비정상이 있을까? ‘정상-비정상’이란 통계학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를 정상이라고 할지는 임의적인 합의에 의해서 결정된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인 《DSM-5》(2013)에서는 ‘성격장애’를 ‘내적 경험과 행동의 지속적 패턴이 자기가 속한 문화에서 현저하게 편향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인지·정동·대인관계·충동조절 등에서 관찰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10개의 질환으로 분류했다. [A군] 편집성 성격장애, 조현성(정신분열성) 성격장애, 조현형 성격장애, [B군] 반사회성 성격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연극성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 [C군] 회피성 성격장애, 의존성 성격장애, 강박성 성격장애가 그것이다.
그런데 ‘정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정상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는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1947년 미국국립정신보건원이 창립된 이래 정신장애에 대한 투자와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으며, 지난 100여 년 동안 비정상에 대한 심리학 연구는 정신의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왔다. 그런데 1998년 미국심리학회장으로 취임한 셀리그먼은 심리학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심리학은 인간의 약점과 장애에 대한 학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강점과 미덕에 대한 학문이기도 해야 한다. 진정한 치료는 손상된 것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최선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드디어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 탄생한 것이다.
셀리그먼은 1975년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발표하면서 우울증 전문가로서 명성을 얻었는데, 인간의 긍정적 측면과 행복에 대한 연구로 방향 전환을 하고 긍정심리학을 본격화했다. 셀리그먼 외에도 ‘몰입’의 연구자인 칙센트미하이, ‘행복’ 연구자 에드워드 디너, ‘미덕’ 연구자 크리스토퍼 피터슨 등이 긍정심리학의 발전에 기여했는데, 이들이 연구하는 분야는 긍정상태(positive state), 긍정특질(positive trait), 긍정조직(positive organization) 등이다. 긍정상태란 행복이나 사랑 등을 의미하고, 긍정특질은 긍정적인 성격.행동양식.미덕.재능 등을 의미하며, 긍정조직이란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가족·학교·직장·사회조직 등을 의미한다. 셀리그먼은 피터슨과 함께 2000년에 VIA연구소(Values in Action Institute)를 설립했는데, 이들의 목표는 성격장애의 진단 기준인 DSM과 같이 ‘좋은 성격’에 대한 진단 목록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2004년에 6개의 덕목(지혜와 지식, 용기, 인간애, 정의, 절제, 초월성)으로 구성된 24개의 성격강점이 추출되었다. 이러한 긍정심리학의 발전은 2000년대 이후 ‘인성교육’이 강조되던 미국 사회의 시대적 배경과도 맞물리는데, 한국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 2014년 인성교육을 법으로 의무화한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었다.

공지사항

등록된 공지사항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