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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코호북스(cohobooks)

부스 타킹턴 (지은이), 구원 (옮긴이)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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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고전한 끝에 서른 살에 소설가로 데뷔한 부스 타킹턴은 데뷔작부터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출간한 소설 가운데 아홉 권이 그해 베스트셀러 10위에 올랐으며 퓰리처상을 두 번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1922년에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당대의 위대한 미국인 열두 명에 뽑혔고, 1933년에는 미국 문예 아카데미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골드메달을 수상했다. 타킹턴은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격변한 미국의 사회상을 주로 소설에 담았는데, 그중 《뉴요커》가 최고의 걸작으로 지목한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원제 Alice Adams)은 미국의 미래를 내다본 그의 선견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범한 가정의 붕괴를 통해 물질주의의 폐해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소설은 초반부터 주제를 뚜렷이 드러낸다. 독자는 50대 환자인 애덤스가 거의 평생을 램브 컴퍼니라는 의약품 도매 업체의 부장으로 일했으며 부인은 그것을 못마땅히 여기고 남편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일을 시작해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은 상당히 노골적으로 그리고 매우 현실적으로 물질적인 욕망의 지배 아래 살고 있는 한 가족과, 청년들 사이에서도 이미 재산이 계급을 나누어놓은 사회를 보여준다.
소설의 배경은 저자의 고향인 인디애나폴리스로 추정된다. 1903년에 장티푸스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타킹턴은 메인주로 휴양을 떠난 뒤에 뉴욕과 유럽 등지에서 8년 가까이 살다 돌아왔는데, 그새 너무나도 달라진 고향의 모습에 경악했다. 소설에서 언급되었듯이 도시는 교외의 탄전 개발과 공업화로 인해 숯가루에 덮여 있었고, 공사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타킹턴은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만큼이나 사람들의 달라진 이상에 거부감을 느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이 초토화된 틈에 세계 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한 미국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전대미문의 풍요를 누렸다. 경기 호황과 비즈니스의 번창 속에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좇는 ‘진취적’ 기상을 찬양했고, 성공한 인생이란 곧 물질적인 성취라는 아메리칸드림과 자수성가의 환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를 쟁취하지 못한 이들은 시대에 뒤처진 패배자로 여겨졌는데,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는 애덤스 부인의 넋두리는 이들 ‘패배자’의 울분을 오롯이 담고 있다.
부인과 달리 애덤스는 자기 인생에 포기에 가까운 수용의 태도를 보인다. 애덤스는 그가 숭배하는 위대한 J. A. 램브의 광휘 속에 머무르며 그의 관심과 신뢰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결혼 전에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담겨 있는 열정은 물론 만사에 흥미를 잃은 애덤스가 아끼는 대상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고 다른 한 명은 그가 숭배하는 고용주 J. A. 램브다. 얄궂게도 애덤스는 그중 한 명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을 배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소설의 첫 문장에서 ‘구식 사고방식’을 지녔다고 표현된 애덤스는 무너지기 시작한 구시대의 가치관을 대표한다. 소설은 애덤스가 가치관을 타협한 시점을 기준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애덤스가 양심을 버리는 이유가 탐욕이 아니라 딸에 대한 애정이라는 점은 타락의 시작에 대해 고찰할 여지를 준다. 질리도록 잔소리를 퍼붓고 흐느끼고 소리치고, 앨리스의 표현대로 남편을 ‘닦달하여’ 끝내 집안의 붕괴를 초래하는 부인을 단순히 악역으로 보기 힘든 것 또한 부인이 이기심이나 사욕 때문이 아니라 자식들을 위한 마음에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통렬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 월터는 당대의 타락한 청춘을 대표한다. “무엇이든 건전한 것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고 앨리스가 일컬은 월터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입사한 램브 컴퍼니에서 일하고 여가 시간에는 도박을 일삼는다.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으나 월터는 애덤스보다 더 절망적인 열패감과 무력감에 젖어 있다. 회삿돈을 횡령하고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평생 저한테 뭐 하나 해준 적이 없죠.”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도주하는 월터의 타락은 풍요의 시대에 중하층이 느낀 상대적 박탈감을 여지없이 담고 있다.
앨리스는 여느 명작의 주인공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입체적이고 흥미롭다. 앨리스는 단순히 미모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일차원적인 인물이 아니다. 다소 유치하고 허영심이 있지만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에서 따뜻하고 상냥한 심성이 엿보인다. “주인 표시가 있다면 남의 것을 넘보지 않았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나름의 가치관도 분명하다. 앨리스가 러셀 앞에서 꾸며내는 모습이 남자를 속이려는 악의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근사한 삶을 꿈꾸는 공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저자는 명백히 밝힌다. 소설 초반에 길에서 마주친 낯선 남자와의 짧고 무의미한 만남에서 스페인식 구애 장면을 연출한 것처럼, 앨리스는 아서 러셀을 통해 바라 마지않던 부잣집 아가씨로서의 삶을 체험한다. 러셀은 “상상 속에서가 아니면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비싼 꽃”과 마찬가지로 앨리스가 동경하는 삶의 일부인 것이다.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은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생생한 디테일과 ‘웃픈’ 해프닝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설의 독자는 앨리스의 비참한 댄스파티와 읽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마지막 저녁 식사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비를 맞으며 직접 딴 제비꽃을 촌스러운 오르간디 드레스에 꽂고, 건들거리는 동생의 마지못한 에스코트를 받으며 파티에 간 앨리스가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온갖 연기를 펼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망함과 동시에 깊은 연민을 자아낸다. 또한 찜통더위 속에서 뜨겁고 기름진 음식이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단추가 빠져나와 불거진 와이셔츠를 입고 땀 흘리는 애덤스의 가여운 몰골과 그를 무시하는 웨이트리스, 테이블 위에서 시들어가는 장미꽃, 그 갑갑한 분위기에서 명랑하게 혼자 수다를 이어나가는 앨리스의 절박한 모습은 타킹턴의 글솜씨와 장면을 연출하는 감각을 증명한다. 타킹턴은 대학 시절 프린스턴의 극단에서 회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했고, (명성 높은 트라이앵글 클럽의 창시자였다) 브로드웨이에서 다수의 희곡을 선보였다. 두 장면은 단지 독자들의 웃음과 연민을 끌어내는 장치가 아니라 중대한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끔찍했던 파티에서 참고 있던 앨리스의 눈물은 애덤스가 끝내 자신의 가치관을 타협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딱히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애덤스 집안의 추레한 실체를 면면으로 드러낸 저녁 식사는 러셀로 하여금 앨리스와의 관계가 불가능함을 깨닫게 한다.
소설의 결말은 비극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피엔딩으로 보기도 어렵다. 비록 애덤스 집안은 망가졌지만 앨리스는 성장했다. 앨리스가 공상에서 헤어나와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하루아침에 극적으로 이루어진 변화가 아니라 초반부터 꾸준히 암시된 가능성이 실현된 것이다. 허세스럽게 지어낸 Alys라는 이름을 버린 순간부터 앨리스는 진정한 자기를 찾는 여정에 올랐다. 비서 학교의 간판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외면하지 않는 모습에서도 앨리스가 역경을 당당히 마주하리라는 것이 암시되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미국에서는 여성의 인권 신장 운동이 활발했고 교육과 직업의 기회가 증폭했다. 그러나 소설이 출간된 1920년대 초만 해도 대부분 여성은 가정 밖에서 직업을 구하지 않았다. 여성은 전체 인력의 20퍼센트 남짓했는데, 대부분 요리사와 가사도우미 등으로 남의 가정에서 일했다. 여성의 교육 역시 여전히 제한되어 있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상류층 여성의 특권이었다. 따라서 앨리스처럼 자기 재산이 없는 중하층 여성에게는 결혼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이런 당대의 현실을 고려하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고 어려움에 부닥친 가족을 돕기 위해 비서 학교로 향하는 앨리스의 용기와 기백이 한층 더 감동적으로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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