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삶
arte(아르테)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은이), 윤진 (옮긴이)
2023-03-31
대출가능 (보유:2, 대출:0)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세계를 예고한
초기 대표작 국내 첫 출간!
1984년 공쿠르상 수상 작가의 초기 대표작
뒤라스적 세계에 대한 예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의 초기를 대표하는 작품인 『평온한 삶』(1944)이 아르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 시리즈인 ‘클래식 라이브러리’의 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작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1942년에 쓴 그녀의 두 번째 소설이다. 이해는 뒤라스와 첫 번째 남편인 로베르 앙텔므가 파리 생브누아가의 아파트에 정착한 해였고(이곳은 이후 당대 문인들과 정치와 문학을 논하던 ‘생브누아 그룹’의 거점이 되었다), 그녀의 문학적 감수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어두운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난 해였다. 즉 이해에는 로베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망했고, 인도차이나에서는 작은 오빠 폴이 전쟁 중에 사망했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연인인 디오니스 마스콜로를 만난 해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평온한 삶』은 작가가 성인이 된 뒤 처음 겪은 상실로 깊은 상처를 입었고, 또한 절망적인 조국을 위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뒤라스를 매혹한 마스콜로와 함께한 시기에 태어난 작품인 것이다.
뒤라스의 작품 세계는 전통적 소설의 형식이나 관습을 부정한 누보로망적 작품인 『모데라토 칸타빌레』(1958)와 알랭 레네의 영화를 위한 시나리오로 쓴 『히로시마 내 사랑』(1960)을 기점으로 둘로 나누어진다. 한쪽에는 전통적인 소설 양식을 따르던 ‘뒤라스 이전의 뒤라스’가 있고, 다른 쪽에는 전위적인 글쓰기와 함께 특유의 미학을 구현하면서 연극과 영화 등으로 창작의 영역을 확장해 간 뒤라스가 있다. 전자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철면피들』(1943), 『평온한 삶』, 『태평양을 막는 제방』(1950), 『지브롤터의 선원』(1952) 등이 있고,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롤 베 스타인의 환희』, 『부영사』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듯 전자와 후자의 세계가 뚜렷이 나누어짐에도 불구하고 뒤라스의 작품에서는 가족 관계가 주는 불안과 절망이 계속해서 변주되어 나타나는데, 『평온한 삶』에는 그것이 거의 온전히 그려져 있다. 가족에게 불행을 불러오지만 가족이기에 마음 놓고 증오하지 못하는 인물, 근친상간에 가까운 감정으로 이어진 남자 형제가 있고, 무엇보다 『연인』의 ‘나’만큼이나 냉소적인 프랑신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권태를 둘러싼 한 인물의 자기 성찰
『평온한 삶』에서는 프랑스 남서부 시골 마을의 뷔그 농장에서 살아가는 스물여섯 살의 프랑신 베르나트가 화자로 등장한다. 때는 “뷔그의 부동성”이 가장 민감하게 느껴지는 8월의 목전. 베르나트 가족은 20년 전 쫓기듯 프랑스로 와서 뷔그 농장에 정착했다. 부모의 무기력과 프랑신과 니콜라 남매의 절망은 이들 가족을 짓누른다.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점에서 남매의 삶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프랑신은 뷔그의 무력한 고요를 깨트리기로 한다. 문제의 사건은 프랑신의 가족이 뷔그에 못 박힌 이유가 된 외삼촌 제롬과 관련된다. 1부는 “그저 헤어지고 싶은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통해 이어”진 제롬의 죽음, 그리고 아마도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던 니콜라의 죽음이 중심을 이룬다.
1부에서 일어난 두 번의 죽음에 이어진 2부는 프랑신이 혼자 바닷가에 머무는 보름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혼자 지낼 수 있게 된 프랑신은 1부에서의 무기력한 상태와 다르게 상념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급기야 자기 분열에 다가간다. 이러한 분열 끝에 프랑신은 뷔그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되짚어 가고, 3부에서는 전과 똑같은, 그러나 전과 달라진 뷔그로 돌아온다.
이 작품에서 ‘평온한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단어는 ‘권태’다. 권태는 이야기 끝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사라질 수 있는 것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상태가 평온한 삶이다.
“그래도 언젠가 권태롭지 않은 날이 오겠지. 머지않았다. 나는 그럴 필요조차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평온한 삶이 오고 있다.”
가족과 사랑 이야기를 내세운 이 소설은 결국 권태를 둘러싼 한 인물의 자기 성찰을 담은 것이다. 『평온한 삶』은 훗날 본격적으로 개화하게 될 뒤라스적 세계를 품고 있다. 뒤라스는 절제되고 냉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상처와 수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냉정함이 미처 가리지 못한 상처와 수치를 엿보는 독자는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에서 위로를 얻게 된다.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학의 다리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에 대하여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아르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세계문학 시리즈로, 이에 앞서 문학과 철학과 예술의 거장의 자취를 찾아가는 기행 평전 시리즈로 호평을 받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명성을 잇는 또 하나의 야심 찬 시도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공간’을 통한 거장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형제 격인 클래식 라이브러리 시리즈는 ‘작품’을 통해 거장의 숨결을 느껴 보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거장을 만나는 세 개의 다리, 즉 ‘공간’과 ‘작품’과 ‘생애’가 비로소 놓이게 된 셈이다.
시중에는 이미 많은 종류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있지만, 아르테에서는 우리 시대 젊은 독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전문가급 역자에 의한 공들인 번역은 물론이고, 고전 하면 으레 떠오르기 마련인 무겁고 진중한 느낌에서 탈피하여 젊고 산뜻한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웠다. 번역의 질적 측면으로 보나, 그것을 담고 있는 그릇의 외관으로 보나 클래식 라이브러리는 오늘날 젊은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약 5년간의 준비 끝에 2023년 봄과 함께 첫선을 보이게 되는 작품은 『슬픔이여 안녕』(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평온한 삶』(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지음, 안시열 옮김), 『워더링 하이츠』(에밀리 브론테 지음, 윤교찬 옮김) 이렇게 4종으로, 모두 여성 서사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느 시절보다도 여성 서사가 문화의 흐름을 강력하게 주도하고 있는 때다. 그런 만큼 새롭게 번역된 여성 서사의 고전을 만나는 일은 반가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르테에서는 그 밖에도 『변신』, 『1984』, 『인간 실격』, 『월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등 올 한 해 총 19종의 세계문학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
본명 마르그리트 도나디외. 1914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의 도시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1921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의 인사이동에 따라 두 오빠와 함께 동남아시아 곳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2년 프랑스로 귀국해 소르본대학에서 수학,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1943년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차대전중에는 훗날 프랑스의 대통령이 될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고, 종전 후에도 알제리전쟁 반대운동과 68혁명에 참여하는 등 프랑스 현대사의 현장에 직접 나섰다.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으로 그는 『모데라토 칸타빌레』(1958), 『여름 저녁 열시 반』(1960), 『롤 V. 슈타인의 황홀』(1964), 『부영사』(1966) 등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독특한 문학적 색채로 인해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로 거론되기도 하였지만, 뒤라스 자신은 어떤 갈래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채 특유의 반복과 비정형적인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자신만의 글쓰기를 모색해갔다. 뒤라스가 1982년 발표한 『죽음의 병』은 그의 연인 얀 앙드레아와의 사랑을 바탕으로 구체화된 작품으로, 후대 비평가들이 ‘얀 앙드레아 연작’ 혹은 ‘대서양 연작’으로 분류하는 작품의 원형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부재와 사랑, 고통과 기다림, 글쓰기와 광기, 여성성과 동성애의 기이한 결합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누보로망의 시대에서 결국 살아남을 단 하나의 작가는 뒤라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그는 당대의 문학사적 흐름에서 비껴가면서도 절대 빛바래지 않는 독자적인 작품들을 발표했다.
뒤라스는 문학의 범주를 넘어 영화계에도 분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1960)의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뒤라스는 소설과 영화를 가로지르는 독보적인 작업을 펼쳐나간다. 1975년에는 자신의 소설 『부영사』를 각색한 영화 〈인디아 송〉으로 칸영화제 예술·비평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한다.
1984년에는 어린 시절 인도차이나에서의 시간을 바탕으로 쓴 소설 『연인』이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반세기에 걸쳐 문학과 영화, 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 칠십 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한 그는 마지막 몇 년간의 글을 모은 『이게 다예요』(1995)로 마침표를 찍고 1996년 3월 3일, 파리의 자택에서 세상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