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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산책방

정선임 (지은이)

202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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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이 ‘요카타’의 세계로 최대한 많은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다.
소설이라는 장(場)에서 함께 웃고 싶어서. 함께 있는 힘껏 쓸쓸해지고 싶어서.”
_조해진(소설가)

현실을 녹인 이야기와 따뜻한 문장으로
지속적인 삶을 향해 부드럽게 나아가는 여덟 편의 이야기


정선임 소설에서 고난은 예정된 파도처럼 온다. 불길한 파동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멀리서도 감지할 수 있다. 마침내 세찬 물살에 부딪혔을 때 인물들은 흐려지거나 지워지거나 밀려나며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고난은 늙음, 가난, 생계, 죽음 등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때로는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요카타」의 화자 연화에게 있어서 삶이란 그저 견뎌내는 것에 가까웠다. 100세라는 나이와 이름부터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무심했던 아버지에 의해 출생 신고 없이, 죽은 언니의 호적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순간순간마다 연화는 이물질처럼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덜그럭거리는 존재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바로 96세의, 이름 없는 진짜 자신의 모습이다. 연화가 그것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수심 깊은 곳에 묻혀 사라질 뻔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휩쓸리거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정선임의 인물들은 자리를 지키고 서서 삶을 또렷하게 직시하고자 한다. 그 의지는 표제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안에서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된다. 비대면 뜨개 모임에서 만난 지연의 부탁으로, 빈집에 남겨진 고양이들을 돌보기 위해 ‘나’는 그녀의 집을 찾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건 ‘고’ 한 마리뿐이다. 나머지 한 마리, ‘양이’의 부재는 소설 내에서 정체 모를 불길함을 암시한다.

몇 번이고 헛손질해도 괜찮다. 다시 잡을 수 있다면. 양이니?
어둠 속에서 기다리다, 또다시 부른다. 양이야.
몇 번이고 부를 수 있다. 분명 두 마리라고 했으니까.(225~226쪽)

그러나 ‘나’는 양이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호명만이 존재를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처럼. 이름이 필요한 또 다른 이가 「얼음이 떨어지던 밤」에 있다. 프리랜서 PD로 일하다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해 섬으로 내려온 현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집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것. 그 사실이 담긴 문서에 이름을 새겨 넣고, 안정적인 자리를 확립하는 것. 그러나 그의 연인인 지원은 아무런 확신 없이 안정감만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추진해야 함에 불안을 느낀다. 연고자도 없는 섬으로 떠밀리듯 도달한 두 사람에게 찾아든 불길함은 그들 앞에 놓여 있는 무연고자의 무덤으로 구체화된다.
한편 「우리가 우리였던」의 고모와 은재는 사회가 제시하는 관습적인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찾고자 했다. 화자인 ‘나’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모가 남긴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삼기 위해, 고모의 동거인이었던 은재에게 퇴거 명령을 전하려 한다. 집안 어른들은 결혼하지 않고 함께하는 둘을 불편하게 여겼지만, 그 집에는 사랑을 듬뿍 받는 고양이와 노래와 음악, 달큼한 술, 행복으로 충만한 시간들이 있었다. 버려진 가구마저도 그곳에 두면 빛나던 것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시절을 저버려야 하는 지금, 은재는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담담하게 고모의 석실 앞에 고양이 치자의 작은 관을 묻는다.

“여기 있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113쪽)

눈 부셨던 지난날들은 온기가 되어 땅 위에 새겨진다. 속이 텅 비었던 「얼음이 떨어지던 밤」의 무연고 묘와는 달리 고모와 치자의 묘는 ‘우리가 우리였던’ 시간으로 충만하게 차오른다. 이 충만함은 쏟아지는 주홍빛 햇살을 받으며 광장에 꼿꼿하게 서 있는 「구부린 마음」의 ‘나’를 통과한다. 이직을 반복하며 새로운 직장에 짐을 풀 때마다 ‘나’는 전임자가 그 자리에서 버티기 위해 애썼던 흔적들을 발견하곤 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온 ‘나’가 지금 모르는 사람의 부탁 때문에 이토록 긴 줄의 끝에 서서 반나절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이탈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의 가치를 안다. 자리 없이 오래 떠돌아 본 적 있기에,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현재의 그 꼿꼿함은 마침내 눈부시다.
이미 늦어 가망이 없고 무용한 일로 느껴지는 것일지라도 정선임 소설 속 인물들은 그것을 지키고자 한다. 되찾고, 위로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귓속말」은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와 한국에서 불법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 썸낭의 삶과 죽음을 그린다.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화자 ‘대수’는 아내의 죽음과 썸낭의 죽음을 거치며 자신이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한다. 「몰려오는 것들」에 이르러 떠밀리고 잊힌 자들의 죽음은 더욱 만연해진다. 수몰 사태라는 대재앙 앞, 죽은 이에게 무덤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잔혹한 현실 앞에서도 삶의 열의를 잃지 않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서점을 열고, 사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그리고 무언가를 지키고자 애쓰는 이들을 지켜봐 온 한 노인이 죽음을 앞둔 채로 병상에 누워 있다(「무슨 말인지 알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율리아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어. 아들이 원하던 세상도. 그래도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도 몰랐던 우리보다는 나을 거야. 율리아는 싸우고 있어.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 자신을 품어주었던 것들과 그래서 몸과 정신의 일부가 되어버려 어떻게 분리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과. 어떤 세상이 올지 보지 못하게 되는 건 아쉽지만 괜찮아. 아니, 그래서 다행인 것도 같아. 무슨 말인지 알 거야. 당신은.(78쪽)

다행한 삶을 위해 우리는 각자 분투한다. 치열한 일상에 지쳐, 때로는 깊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는 고양이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다. 잊히고 싶다. 그러나, 잊히고 싶다는 생각의 한편에는 잊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잃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쓰고 싶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정선임은 어딘가에 조심히 자리를 잡고 웅크린 채 애쓰는 고양이와 같은 존재들을 우리 앞에 힘 있게 데려다 놓는다. 누군가가 돌아보고 믿어주고, 기억해 준다면 존재는 영원히 지속된다. 있는 곳이 어디든, 자기 존재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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